암흑물질의 약점과 끝나지 않은 논쟁
숨은 가정
갈수록 암흑 물질의 존재를 믿는 천문학자가 늘고 있지만 여전히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킬레스건과 같은 암흑 물질의 약점이 숨은 가정 속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암흑 물질의 존재는 뉴 턴의 중력 법칙이 정확할 뿐 아니라 중력장이 아무리 약하더라도 적용된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미 이 법칙이 강한 중력장의 경우에는 잘 적용되지 않으며, 이런 때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이와 정반대로 중력이 극히 약할 때도 그렇지 않을까 의심해 볼 수 있다. 1981년 사람들이 암흑 물질의 개념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을 때 이스라엘의 물리학자 모르데하이 밀그롬(Mordehai Milgrom)은 뉴턴의 중력 법칙을 수정하면 새로운 입자를 들먹이지 않고도 회전하는 은하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력은 물체를 가속시킨 다는 점을 돌이켜 보자.
밀그롬 은 어느 정도 이하의 중력에서는 뉴턴의 법칙이 변하여 거리의 제 곱이 아니라 거리에 바로 반비례한다고 제안했다. 다시 말해서 거리가 두 배와 세 배가 되면 가속이 각각 4분의 1과 9분의 1로 줄 어드는 게 아니라 2분의 1과 3분의 1로 줄어든다는 뜻이다. 뉴턴의 법칙이 이렇게 변하는 때의 중력은 종이 한 장이 만드는 중력 장에 해당할 정도로 극히 미미하다. 하지만 은하의 외곽에서는 극적인 효과를 나타낼 정도가 된다. 밀그롬은 약한 중력장이 예상보다 조금 세게 작용하도록 이론적 모델을 꾸민다면 은하의 맨 바깥쪽에 이르도록 은하가 일정한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을 성공적으로 보였다.
그는 이 모델 을 '수정된 뉴턴 역학(Modified Newtonian Dynamics, MOND)이라고 불렀는데, 대부분의 경우 이것이 암흑 물질을 이용한 모델보 다 관측에 더 잘 들어맞음에도 아직 소수의 견해로 남아 있다. 하지만 앞으로 암흑 물질이 검출되지 않고 LHC에서 뉴트랄리노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점점 더 많은 천문학자가 한때는 불가능하 다고 여겼던 가설, 곧 뉴턴의 중력 법칙이 바뀔 수 있다는 제안을 다시 고려하게 될 것이다.
MOND의 결점은 아무런 이론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며, 이 때 문에 많은 천문학자는 이를 진지하게 숙고하기를 꺼렸다.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이와 같은 발견이 이해에 앞서는 경우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행성의 운행에 대한 케플러의 법칙도 17세기 초에 처음 제안되었을 때는 아무런 이론적 근거가 없었다. 그는 단순히 관측 자료를 세밀하게 검토하다가 행성의 운행을 재현할 방 정식을 발견했을 뿐이었으며, 1687년에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 을 내놓은 뒤에야 비로소 그것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천문 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처럼 관측을 통해 법칙이 얻어지고 나중 에야 이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된 경우가 많다.
하지만 MOND 자체에도 문제는 있다. 이를 이용하여 은하단의 운행을 재현하려면 관측된 것보다 많은 물질이 필요하다. 그렇 다면 다시 암흑 물질을 찾는 길로 돌아가야 할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천문학자들은 은하단 속에 상당한 양의 보 통 물질이 자외선을 방출하는 따뜻한 기체의 형태로 숨어 있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자외선에 민감한 망원경으로 이를 검출할 수 있다면 은하단에 얽힌 MOND의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끝나지 않은 논쟁
암흑 물질의 존재를 입증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최근에 천문학 자들은 약한 중력 렌즈 효과(weak gravitational lensing)라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아이디어는 시공간이 휘어질 수 있다는 일반 상대성 이론의 결론에서 나왔다. 천문학자들은 공간의 조직에 큰 굴곡을 만드는 가까운 은 하단을 찾고 이를 이용해 더욱 먼 곳의 천체에서 오는 빛을 관찰한다. 이 빛이 은하단을 통과하면 공간의 만곡에 따라 휘어지므로 먼 곳에 있는 천체의 영상이 왜곡되는데, 이를테면 이는 우주에 있는 거울의 방과 같다. 이 왜곡을 분석함으로써 천문학자들은 은하단을 둘러싼 공간의 곡률 지도를 그려낼 수 있기를 바란다. 만일 이 곡률이 은하의 분포로 설명할 수 있는 곡률보다 크다면 가능한 한 가지 해결책은 암흑 물질의 존재를 가정하고 이 곡률을 이용하여 암흑 물질의 지도를 작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설명도 가능한데, 그것은 MOND의 작용에 의해 예상보다 큰 곡률이 형성된다고 보는 것이다.
경쟁하는 이 두 이론의 특별한 싸움터로는 서로 충돌하는 은하를 가리키는 총알 성단(Bullet Cluster)을 들 수 있다. 관측에 따르면 이 은하들 사이의 기체가 모두 날아갔음에도 그 공간에 약한 중력 렌즈 현상이 나타나 은하들 주위의 공간이 큰 곡률로 휘어져, 있었다. 이는 두 성단을 붙들기에 충분한 암흑 물질의 거대한 헤일로이거나, 아니면 MOND가 적용될 만한 영역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다른 은하단들의 충돌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므로 천문학자들은 암흑 물질 이론과 MOND 이론 중 어느 것이 옳은 지 판정하기가 곤란하다. 하지만 아주 최근에 이 교착 상태를 해 소할 계기가 발견되었는데, 아벨 520(Abell 520)이라는 이 은하 충돌은 아주 기이한 것이어서 모든 사람을 혼란에 빠뜨렸다.
이 특이한 우주적 충돌에서 나타난 약한 중력 렌즈 현상은 왜인 지는 모르지만 암흑 물질이 은하와 분리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암흑 물질의 이론과 완전히 어긋나는 결과였는데, 이를 설명하는 유일한 길은 암흑 물질이 그 자신과 상호 작용을 하면서 암흑 물질에만 영향을 주는 힘을 발휘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가설은 총알 성단의 충돌에 얽힌 문제도 해결해 준다. 컴퓨터 모 델링에 따르면 성단의 충돌 속도가 관측된 속도에 이르지 않는데 지금껏 예상하지 못했던 암흑 물질의 힘을 고려하면 이에 필요한 여분의 힘이 얻어진다.
현재의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혼란스럽다. MOND라고 해서 언제나 잘 들어맞는 것은 아니며, 이게 확실히 입증되려면 우주에는 오늘날 관찰되는 것보다 두 배가량의 물질이 있어야 한다. 반면 암흑 물질 이론은 새롭고 독특한 힘이 존재해야 그 그림이 제대로 그려진다. 현재로서는 암흑 물질이 무엇인지 아직 아무도 모르며 심지어 그 존재 여부조차 모른다. 어쩌면 이는 중력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부족한 탓에 만들어진 환상에 불과할 수도 있 다. 하지만 앞으로 몇 년 사이에 LHC와 같은 암흑 물질 검출 장 치나 지구 궤도를 돌면서 암흑 물질의 붕괴 신호를 포착하는 인공 위성 등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면 그 존재 여부가 깨끗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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