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이크 방정식의 마지막 항
추측인가 억측인가?
드레이크 방정식에 남은 다른 항들의 값도 거의 추측으로 어림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생물이 살고 있는 행성의 예는 지구 하나뿐인데, 하나의 표본으로는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기 때 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당분간 할수 있는 일은 이 정도이다. 드레이크 방정식의 다음 두 항은 지적 생물이 나타날 확률과 이 생물이 우주 공간에 전파 메시지를 보낼 기술을 개발할 확률이다. 만일 지구의 역사가 생물 역사의 전형이라면 이 확률은 사뭇 낮다고 봐야 한다. 최초의 생명이 지적 생물이 되도록 진화하는 동안 넘어야 할 장벽이 꽤 많기 때문이다.
화석 기록에 따르면 지구에서의 진화는, 느리지만 가속적인 과정이었다. 지구 나이의 절반이 지나도록 생명은 핵이 없는 단순한 형태의 원핵 세포에 갇힌 원핵생물이었다. 이 세포가 기능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은 세포막 안에 뒤범벅으로 섞여 있었다. 이런 세포는 약 20억 년 전이 되어서야 유전 물질이 막으로 둘러싸인, 핵을 가진 진핵 세포로 진화했다. 이렇게 시작된 복잡성의 비약은 내용물을 더 조직적으로 나뉘어 전문화된 부분들이 형성되는 과정으로 이어졌고, 이로써 세포는 주변의 자원을 더욱 효율적으로 이용하게 되었다.
이후 세포들은 어찌어찌 서로 어울려 마침내 다세포 생물이 만들어졌는데, 물론 이 과정에서도 엄청난 세월이 걸렸다. 지구에서 복잡한 생물이 성공적으로 살 수 있게 된 것은 겨우 5억 년 전의 일로서, 이 무렵 캄브리아 폭발(Cambrian Explosion)이라는 진화학적 사건이 일어났다. 이 경이로운 시기는 7000만~8000만 년밖에 지속되지 않았지만 중요한 동물군은 대부분 이때 나타났다. 이 시기의 특출한 진화 속도는 대기에 쌓인 산소에 의해 자극을 받았던 것 같다. 산소는 복잡한 생물에게 필요한 많은 에너지를 줄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소는 햇빛을 에너지로 바꾸는 광합성 세 포와 어떤 미생물들의 대사 과정에서 배출되는 폐기물이었으므로 산소의 축적은 지구 역사상 전 지구에 걸친 최악의 오염이기도 했다. 산소는 반응성이 아주 높은 기체이며, 상황에 따라서는 생물학적 분자들을 거칠게 공격하므로 유독하기도 하다. 대기에 산소가 쌓임에 따라 고대의 미생물들은 대량 멸종을 당했는데, 자신들이 만든 물질에 오염되어 파괴되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라고 하겠다.
고대 미생물의 일부는 땅속처럼 산소로부터 자유로운 도피처를 찾아 살아남았지만 다른 종들은 이와 맞서는 전략을 펼쳤다. 산소를 콜라겐과 같은 분자에 결합시키는 방법은 그 한 예인데, 이렇 게 하면 조직이 튼튼해져서 생물이 크게 자랄 수 있다. 이것은 또한 산소에서 에너지를 얻는 방법을 개발했는데, 결과적으로 아주 성공적이었으며, 이로부터 산소를 호흡하는 동물이 유래했다. 흔히 사람들은 생물이 에너지가 풍부한 산소를 이용하게 됨으로써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인간의 두뇌가 출현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적인 두뇌를 갖춘 인간은 겨우 20만년 전에야 나타났고, 나아가 우주 공간에 신호를 보낼 수 있게 된 것 은 70년밖에 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지구의 역사 전체를 두고 볼 때 인류의 삶은 순간에 불과하며, 우주 공간에 전파를 보낼 수 있게 된 기간은 그것의 미미한 일부일 뿐이다.
어떤 행성에 지적인 생물이 나타났더라도 이 생물이 반드시 통신 기술을 개발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예컨대 지금껏 알려진 유일한 생명체 거주 가능 행성 글리세 581c을 생각해 보자. 어쩌면 이 행성의 표면은 온통 대양으로 이루어져서 대륙은 전혀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거기서는 지적인 해양 생물이 나타나 수중 문명을 이룩할 수는 있을지언정 외계로 전파를 보낼 전기 기술은 개발할 수 없을 것이다.
드레이크 방정식의 마지막 항은 통신을 하는 문명이 지속될 평균 기간이다. 이와 관련하여 인류의 역사에서 외계로 신호를 보낼 능력과 핵무기로 자멸할 능력을 갖춘 시기가 비슷하게 찾아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지적인 존재는 이런 기술 을 개발한 뒤 얼마 가지 않아, 어쩌면 한두세기 뒤에 사라질 수도 있다. 이런 파괴적 사건이 반드시 전쟁일 필요는 없다. 인류가 개발한 기술이 기후에도 영향을 미쳐 비극적 사태가 초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낙관적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인류가 이런 문제를 극복할 것이라고 보며, 그럴 경우 우리는 확보한 기술을 장기간 쓸 수 있을 것이다. 추산에 따르면 태양이 부풀어 지구의 태 양을 모두 증발시킬 때까지 약 몇십억 년 동안 지구는 생명체 거주 가능 행성으로 남으리라 여겨지므로 인류는 사뭇 오랫동안 우주 공간으로 신호를 보 낼 수 있을 것이다. 드레이크 방정식의 핵심은 마지막 항이 다른 모든 항들을 압도한다는 사실이다. 기술적으로 진보한 문명의 지속 기간을 길게 잡을수록 은하에 존재하는 그들의 수는 늘어날 것이고, 그에 비례하여 그들로부터 신호를 받을 확률도 증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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