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티쿠스의 우주체계, 왜 당대에 인정받지 못했을까?

우주과학|2019. 6. 13. 15:56

코페르니쿠스의 우주체계 - 지동설, 책을 출판하기 까지의 과정


1543년 출판된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는 과학혁명이라는 대사건을 촉발했다. 이 책에 담긴 태양 중심 우주 체계는 지구 중심 우주체계보다 단순하면서도 미적으로 조화로웠다. 또 아리스토텔레스 -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는 복잡하게 설명해야 했던 여러 현상을 쉽게 설명해 낼 수 있었다. 코페르니쿠스 체계는 행성의 역행 문제를 주전원 개념 없이 우주 구조만으로 간단하게 해결했다. 태양을 중심으로 한 행성들의 순서 배치나 내행성의 이각 등도 별도의 가정없이 설명할 수 있었다. 또한, 지구를 하나의 행성으로 천상계에 배치해 지상계와 천상게의 구분을흔들어놓고,우주의 크기도 무한하게  확장시켰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적인 이론이 당대에 쉽게 수용되지는 않았다. 수학자들과 천문학자들은 코페르니쿠스 체계를 천문학적 계산표 정도로 생각했다. 다수의 자연철학자들은 그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체계와 배치된다는 이유로, 대중은 자신들의 일상적인 경험과 다르다는 이유로 무시했다. 이들은 지구의 자전과 공정에 여러 의문을 제기했다. 그들에게는지구가 우주의 중심이아니라면 무거운 물체가 땅으로 떨어질 이유가 없어 보였다. 사람들은 지구가 움직이는 속도도 느끼지 못했고, 위로 쏘아 올린 포탄은 제자리에 떨어졌다. 사람들은 이런 현상이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이는 태양 중심 우주 체계가 쉽게 수용되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코페르니쿠스가 고향의 교회에서 천문연구에 심취해 있을때, 유럽인들은 대항해 시대라고 불리는 탐험의 시대를 거치며 활동 영역을 전 세계로 확대하고 있었다. 또 종교적으로는 종교 계혁이라는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었다. 한편 당시 사용하던 달력인 율리우스력은 오차가 심했기 때문에 달력 개혁의 필요성도 절실한 상황이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학자들은 고대의 지식이 당대에 적용하기는 적합하지 않다고 느꼈고, 이는 지식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코페르니쿠스가 천문 연구에 매진하던 당시 유럽은 이처럼 거대한 지적 변화를 위한 잠재력이 극대화된 상태였다. 


코페르니쿠스는 근대의 탄생이라는이 거대한 지적 흐름 앞을 달리고있었다. 코페르니쿠스는 1504년 무렵부터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도록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전원을 재배치하기 시작했다. 1510년 즈음에는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한다는 가설을 담은 '짧은 해설서'를 비공개적으로 출판하기도 했다. 


처음에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고정되어 있고, 다른 행성들은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행성들의 천구가 겹치는 문제가 발생했다. 코페르니쿠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태양을 우주의 중심으로 옮기고 지구를 행성 중 하나로 바꾸었다. 천구들은 서로 겹치지 않고 완벽하게 배치될 뿐 아니라 행성의 움직임이 더 간결해졌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체계


코페르니쿠스가 한창 새로운 우주 체계를 고안하던 1515년, 마침내 프톨레마이오스가 쓴 알마게스트의 전체 내용이 출판되었다. 알마게스트를 열심히 공부한 코페르니쿠스는 알마게스트를 완벽하게 이해함으로써 이 책을 뛰어넘을 수 있는 첫 번째 세대가 되었다.


코페르니쿠스는 교회의 전망대에 관측기구를 설치하고 태양과 행성의 위치, 일식과 월식을 관측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를 태양 중심의 새로운 모델로 바꾸기 위한 자료를 모으기 위해서였다. 1529년부터 코페르니쿠스는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를 완벽하게 대체할 저서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인들은 그에게 책을 빨리 출판할 것을 권유했지만, 코페르니쿠스는 출판을 하지 않은 채 원고를 다듬고 또 가다듬기를 반복했다.


출판을 망설이고 있던 코페르니쿠스에게 레티쿠스라는 오스트리아의 젋은 수학자이자 천문학자가 찾아왔다. 그는 1539년에 코페르니쿠스를 찾아와 약 2년이 넘게 곁에서 머물렀다. 레티쿠스는 코페르니쿠스의 유일한 제자였던 셈이다. 레티쿠스는 코페르니쿠스의 책 내용을 공부했고, 1540년에 '최초의 보고서'라는 글에서 코페르니쿠스 체계를 처음으로 세상에 공표했다. 60대 후반이 된 코페르니쿠스는 제자와 지인들의 설득에 마침내 자신의 책을 출판하기로 결심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책에는 매우 복잡한 그림들이 들어있어서 인쇄술이 발달한 독일까지 가서 인쇄해야 했다.



400쪽에 달하는 코페르니쿠스의 책은 1542년 6월부터 1543년 3월까지, 장장 10개월동안 인쇄되었다. 그 사이에 코페르니쿠스에게는 뇌출혈이 일어났고, 1543년 5월 24일에 그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날은 코페르니쿠스가 자신의 책이 완벽하게 인쇄된 것을 처음으로 확인한 바로 그날이었다고 한다.


코페르니쿠스의 책 제목은 원래 '회전'이었다. 하지만 인쇄소에서는책에 좀 더 긴 제목을 붙여주었다. 이 책이 바로 과학 혁명이라는 엄청난 변혁을 시작하게 했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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