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자동차의 역사

자동차 정보|2019. 9. 24. 15:02

전기산업의 밑바탕에 에디슨이 있었다면 자동차산업의 중흥은 포드주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미국 자동차 평론가 쿠엔틴 윌슨의 저서  "그레이트카" 에는 명차 138대가 등장합니다. 그 가운데 포드는 모두 여덟대 입니다. 




자국 브랜드의 차량이 많기는 하지만, 책에 수록된 차 모두 충분히 멋지고 혁신적인 차량이었습니다. 


포드자동차의 설립


15세때 기계공이 되기로 결심한 헨리포드는 40살에 포드 자동차를 설립했습니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수제작 고급차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당시 당연히 받아들여지던 자동차에 대한 개념에 맞선 것입니다. 자동차가 부자들의 재력이나 신분 과시용 장난감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상에도 강한 반발심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청나게 값비싼 자동차가  잘 팔리는 건 소비자들이 만족해서가 아니라, 공급보다 수요가 훨씬 많기 떄문이다. 그렇게 해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앞으로는 가격을 낮춰 새로운 소비자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고급차 시장은 한정되어 있으며, 모두가 자동차를 소유하는 시대는 생각보다 빨리 올 것이다."



그리고 헨리포드는 자신의 말을 정확히 실천으로 옮겼습니다. 1908년 포드가 만든 모델 T는 850달러에 출시되었습니다. 2기통 엔진을 장착한 모델 T는 당시 20000달러를 넘나들던 타 자동차들에 비해 저렴했습니다. 매달 2,000대씩 이상씩 팔려나가자 포드는 가격을 440달러로, 그리고 295달러로 낮췄습니다. 



자동차산업구조는 모델 T로 인해 누구나 탈 수 있는 대중자동차로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적극적인 방향으로 바뀌었습니다. 1915년 모델 T는 100만 대 생산을 넘어섰고, 1924년에는 1,000만대를 돌파했습니다. 그리고 1927년에는 1,500만대를 넘겼습니다. 



컨베이어 시스템의 도입


포드는 모델 T를 계기로 자동차산업에 현대적인 대량생산 시스템을 접목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 유명한 컨베이어 시스템의 도입입니다. 이 시스템을 자동차 제작에 처음 적용한 1913년 모델 T의 섀시 조립 시간은 대당 12시간 30분에서 2시간  40분으로 엄청나게 줄어들었습니다. 당연히 근로자들의 노동시간도 10분의 1이나 줄었고, 원가 절감에 힘입어 295달러라는 혁신적인 가격 책정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컨베이어 시스템을 도입한 이듬해 모델 T 조립속도는 더더욱 빨라졌습니다. 1914년 연간 24만 8,000대를 생산했고, 이 차 하나만으로 미국 자동차시장의 48퍼센트를 장악했습니다. 노동자들의 근로조건도 혁신적으로 개선되었습니다. 



혁신적인 근무환경


컨베이어 벨트 도입에 반발한 직원들이 회사를 이탈할 움직임을 보이자 포드는 근로시간을 일 9시간엣서 8시간으로 변경했고, 일당을 5달러로 올렸습니다. 당시 미국 자동차 업계의 평균 일당이 2달러 34센트였으니 두배 이상의 임금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후에도 임금 인상은 계속되었고, 1929년에는 9달러까지 이르게 됩니다. 때문에, 포드 공장 앞에는 언제나 일자리를 구하려는 구직자들로 가득했습니다. 다른 자동차회사와 달리 흑인과 여성, 장애인도 차별없이 고용했습니다. 그렇다고 포드가 인도주의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노동조합을 혐오했기 때문입니다.


모델 T는 자동차 산업의 모든것을 바꿔놓았지만 헨리 포드는 이차의 성공에 너무 도취했습니다. GM이 다양한 대중적 모델로 맞불을 놓자 무려 20년간 모델 T만 매달려 있던 포드는 순식간에 2등으로 내려앉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이 다시 포드를 부활시키기 전까지 암흑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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